수많은 단어 중에 제일 그녀에게 어울리는 단어를 꼽자면 바로 '여.신.' 그런데 문제는...
딱! 화장을 지우기 전까지만 여신이다. 화장 전 before와 화장 후 after가 극과 극을 달리는
쌩얼이 안습인 그녀.
외모보단 두뇌가 빛을 발하는 엄마와, 두뇌보단 외모가 빛을 발하는 아빠 사이에서,
주경은 그 빛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태어났다. 한마디로 외모, 두뇌 뭐 하나 제대로
받은 게 없다 이 말이다.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미운오리새끼처럼
지낸 세월도 어언 18년. 그 세월 동안 한가지 가르침을 얻었으니...
가질 수 없는 걸 가지려 해봤자 마음만 아플 뿐이라는 것이다. 타고나길 이렇게 태어났거늘,
예뻐지려 아등바등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람?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될 줄은 미쳐 몰랐다. 눈이 나빠서 썼을 뿐인 뺑뺑이 안경.
보온성을 추구한 검은 스타킹에흰 양말. 깔끔하게 묶은 올백 머리와 폭풍 성장기를
고려해 넉넉하게 맞춰 준 헐렁한 교복, 거기에 흔히들 말하는 '소녀취향' 과는 거리가 아주 머언..
그녀의 독특한 취향은. 다른 아이들에게 그저 '못생긴 주제에 꾸밀 줄도 모르는 찌질한 아이'로 비춰졌다.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일진들의 만두셔틀을 해야했고, 못생겼기 때문에...첫사랑
오빠에게 처참하게 차여야만 했다. 주경에게 학교는 아침마다 스스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지옥과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당한 큰 사기는 가족들에겐 한순간에 집이 홀라당 날아간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지만,
주경에게는 인생역전의 기회였다. 나..전학가는 거야?! 이 기회로 새 학교에서는 셔틀 인생 탈출하고 꽃길만 걸으리!
다짐하고 매일 밤낮으로 메이크업 스킬을 연마하는데..대망의 전학 디데이. 달라진 그녀를 보는 뜨거운 시선들..
입이 떡 벌어진 그들은 말했다...
'여.신.강.림'
예뻐지니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토록 원하고 노력해도 가질 수 없었던 친구도 생겼다. 심지어...
난생처음으로 '단톡방'이라는데도 들어와봤다구! 눈물난다 눈물나! 임주경 인생에도 드디어 꽃이 피는구나!
...까지 였다면 해피엔딩이었겠지. 내 인생이 그러면 그렇지..! 전학 첫날부터 같은 반 남학생에게 쌩얼을 들키고
말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자비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이수호에게...
혹시 소문내면 어떡하지?!
다시 왕따 만두셔틀러로 돌아가긴 싫은데!!
임희경
주경언니, 신인 개발팀
주경 집의 맏딸. 명문대 졸업하고 유명 방송사에 취업해 능력 인정받고, 현재는 신인 개발팀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 시절 4년 내내 한국대 김태희로 불릴 만큼 예쁜 외모지만 취미는 액션게임. 몸으로 하는 익사이팅 스포츠를
즐기며 뭐 고장나면 그냥 맥가이버처럼잘도 고친다. 폭탄주 10잔도 끄떡없는 애주가에 욱하면 입에서 필터 없이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가끔 사람들한테 여자가 여자다워야지...란 말을 듣기도 하지만 "여자다운게 뭔데? 여자면 뭐 어떻게 해야 된단
법이라도 있어?" 라며 더욱 여자답게 익룡 샤우팅을 질러버린다.
그런 그녀가 사랑을 할 땐 어떨까. 앞뒤 재고 따지고, 밀고 당기고 그런 거 모른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따르는 대로 그저 행동할 뿐이다. 내 마음에 꽂힌 남자는 탁 찍어서 꼬시고,
밀어붙여 쟁취하고...싶다. 아직 그런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을 뿐. 그런데 그런 희경이 준우에게 심장을 관통당했다.
이 시대 보기 드문 남자답게 조신한 남성상 준우. 준우를 본 그날, 희경은 자기도 모르게 읊조렸다.
'갖.고.싶.다.' 그날부터 이 언니... 마치 소유욕 발동한 할리퀸 소설의 남주처럼 준우에게 들이댄다.
갖고 싶은데, 답답한 한준우, 이 남자 자꾸 도망치려 든다. 아.. 이런 남잔 처음인데? 희경은 준우를 보며 다시 한번
나지막이 속삭인다. '미치도록.. 갖.고.싶.다. 한.준.우.'
이수호
한마디로 신의 실수. 신이 인간을 빚을 때 잘난 것, 못난 것 공평하게 넣어주셔야 하는데, 그를 빚을 땐 잠시 졸았던 것인지...온갖 잘난 것들만 들이부으셨다. 탈인간급의 외모. 명석한 두뇌. 타고난 운동신경까지. 완벽을 넘어 갓벽하다 갓벽해! 잘난 거 나열하다간 페이지 넘어가니 이쯤에서 접어두겠다.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지만, 정작 본인은 모두에게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에겐 1초의 눈길도 안 주고, 여학생들에게 고백할 시간조차 3초 이상 주지 않는 3중 방탄유리로 되어있는 강철벽남이다.
어린시절 늘 바빴던 톱스타 아버지와 암투병으로 오랜 고생을 하다 돌아가신 엄마.. 그래서 늘 혼자였던 그가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었던 친구 세연이 1년 전 세상을 떠났다. 어찌 보면 그날 이후 그의 세상은 더 차갑게 얼어붙었을지도..
그런 그의 버석한 일상에... 웬 또라이(?) 같은 여자애가 강철벽을 뚫고 돌진했다. 바로 임주경. 화장 안 한 민낯 좀 본 게 뭐라고! 자기 비밀을 지켜달라며 무릎 꿇고 붙들고 매달리고 이 난리냔 말이다.
'내가 보기엔 쌩얼도 꽤 예쁘...아, 암튼!'
어이없고 황당하게 엮인 시작만큼 주경은 꽤나 이상했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처져 주눅 든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금방 저세상 텐션으로 급변해서 깨발랄모드 원숭이처럼 보인다. 더 이상한 건 뭐냐고? 주경이 툭 건네는 해맑은 위로에 가슴이 따뜻해지고, 어둠이라곤 하나 없는 미소에 얼굴이 빨개지고, 짧은 터치에도 두근두근, 아무말대잔치를 내뿜게 된다는 것. 이런 겉바속촉 같은 이수호라니...!
분명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문제가 아니라면...
설마.. 혹시...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첫사랑?
한서준
매력적인 외모, 모델핏 피지컬. 단단한 어깨에 성난 몸...표정도 늘 성이 나있다. 거기에 감미로운 보이스로 아이돌 데뷔 직전까지 갔던 새봄고의 아이돌. 타고난 마초스런 분위기 때문에 조폭들과 연관이 돼 있다는 둥, 옆 학교를 이렇게 저렇게 뭉갰다는 둥 인소재질같은 소문이 늘 따르지만. 실은 아픈 엄마 간병을 도맡아 하고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는 따뜻한 아들이자 다정한 오빠다. 살~짝 기본상식 부족하고 무식한 건 오랜 연습생 생활로 공부에 담을 쌓아 그런 걸로 치자.
1년 전. 처음으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해준 친구 세연이 죽었다. 그날...수호와의 우정도 놓아 버렸다. 세연의 죽음이 꼭 수호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날 이후, 서준은 맘을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러던 중 엄마의 건강 악화로 잠시 휴학했었는데. 3개월 뒤. 다시 복학한 학교에서 오랜만에 보게 된 이수호의 얼굴. 여전히 이수호 그 자식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애써 참았다. 그냥 무시하고, 서로 모르는 사이로..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수호가 웃는다. 평소에 잘 웃지도 않던 놈이 임주경이란 웬 엉뚱한 여자애 앞에서 안 하던 짓까지 한다.
'설마...임주경 좋아하냐, 너?' 처음엔 안절부절못하는 그놈 꼴이 웃겨서 주경에게 접근했는데 주경과 있으면 내가 얘한테 왜 접근했더라? 왜 때문에 얘랑 이러고 있지? 이수호가 뭐더라? 머리가 딸리니 계략남도 못 해 먹겠다! 그러다 보니 이게 호기심으로 변해가고.. 놀리면 재밌고 또 안 보면 보고싶고.. 뭐 그러다 보면 좋아지고...원래 다 이런 거 아닌가?
문제는 하필이면 왜, 이수호가 좋아하는 애냐고!
강수진
화장빨, 어플빨, 포샵빨...따위는 필요없는 새봄고의 원조 쌩얼여신. 늘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고, 걸크러쉬에 공부도 잘한다. 게다가 집안까지 좋은 금수저. 이 정도니 철벽남 이수호의 유일한 여사친이어도..다들 인정하는 부분이다.
10년 전 어릴 적, 수진의 아버지인 강교수가 수호 어머니의 주치의를 하면서부터 수진에게 수호는 좋은 라이벌이었다가, 때론 짝사랑 상대였다가, 다시 이기고 싶고 지면 분한...질투의 대상이기도 한. 단순한 친구라고 정의하기엔 복잡하고 미묘한 사이다. 그렇게 감정은 여러 색깔로 변하면서 차곡차곡 쌓여갔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수진이지만 사실 강압적인 집안 분위기에 늘 힘들어한다. 하지만 힘든 티는 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늘 아무 일 없는 척. 괜찮은척 자신을 감춘다. 수호에게 마저도..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손을 씻는 버릇이 생겼다. 울화가 치밀거나 답답한 마음이 손을 씻으면 같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서...
학교에서만큼은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단순하고 해맑은 수아와 친구가 됐고, 자연스럽게 전학 온 주경과도 친해졌다. 주경은 자신과는 달리 긍정적이고 사랑받고 자라 늘 반짝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아이.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이수호가 주경을 바라본다.
혹시 좋아하나..? 아니겠지..?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손에 생채기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한준우
2학년 5반 담임, 문학교사
오래된 책과 레코드판을 사랑하는 감성 문학 선생님. 감성적인 만큼 심성은 부드럽고 따뜻하나, 그만큼 오글거린다. 오글거린다는 학생들의 원성에도 꿋꿋하게 명언으로 아침 조회를 하며, 수업시간엔 꼭 시를 낭독하면서 스스로 감성에 취하는 편. 변명을 하자면 이게 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나오는 오글력이란 말씀. 가만히 있어도 아픈 게 청춘인데, 작은 시 한 편으로 마음의 위로를 해주고 싶달까?
차도 아버지가 끌던 20년 넘은 차를 여전히 타고 다니고, 옛 음악을 즐겨 듣는다. 아날로그 인간이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이라도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고 싶다. 그런 성격 탓에 연애도 못 해봤다. 사실 연애할 생각도 안 해봤다는 게 맞을 거다. 어렸을 때부터 넉넉지 않던 형편에 통장 쪼개기로 알뜰하게 적금 넣는 그라, 남아있는 학자금 대출을 걱정하는 그에게 사랑은 사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맑은 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백마탄 왕자(?)처럼 나타나 가방에서 립스틱 대신 십자드라이버를 꺼내 고장 난 차를 고쳐주던 크 여자.. 희경. 멋있고 설렜다. 그런데 자신의 반 학생인 주경의 언니란다. 안타깝지만 가르치는 학생의 가족과는 연애할 수 없다...그것이 자신의 철칙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의 행로를 가로막는 온갖 방해물은 더 깊은 사랑을 만드는 동기가 된다'고.